"대통령님도, 추기경님도 내가 만든 등산화만 찾으셨어."
서울 성북구 돈암동에서 32년째 수제(手製) 등산화를 만들고 있는 '알퐁소 등산화' 주인
김택규 (77)씨는 이런 자랑과 함께 "한번 보라"며 거친 두 손을 내밀었다. 열 손가락 모두 손톱 밑은 까맣게 물들어 있었고, 움푹 들어간 왼쪽 엄지손톱은 구두 만드는 망치로 수천 번은 맞은 듯했다.
알퐁소 등산화는 유명 인사들의 단골집으로 입소문이 난 지 오래다.
↑ [조선일보]25일 서울 성북구 돈암동 가게에서 만난 김택규씨의 등산화 이야기는 끝이 없을 듯 했다. 왼쪽 엄지손톱은(아래 사진) 구두 망치로 수천 번은 맞은 듯했다. /이태경 기자 ecaro@chosun.com
고객 명단에는
전두환 전 대통령,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 고(故)
김수환 추기경,
고건 전 총리 등의 이름이 빼곡하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일반 신발을 맞췄다. 1977년 한국인 첫
에베레스트 등정 때 원정대장이었던 원로 산악인 김영도씨도 그가 만든 등산화를 즐겨 신었다. 최근 도보(徒步)로 240㎞에 이르는 고향길에 오른 정상명 전 검찰총장도 알퐁소 등산화를 신었다.
일본 ·
러시아 ·
이탈리아 ·
뉴질랜드 에서도 주문이 들어온다. 드물지만 아프리카
케냐 에서도 그의 등산화를 찾는다.
김씨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 특히 내 등산화를 좋아했다. 퇴임 후에 연희동 자택으로 불러서 가보면 모여 있는 지인들이 단체로 등산화를 맞추고 그랬다. 전 전 대통령이 팔아준 등산화가 250켤레는 되는 것 같다"고 했다.
일흔이 넘은 지 한참이지만 그는 아직도 고객이 찾아오면 직접 발 모양과 치수를 잰다.
김씨는 "오전 7시부터 오후 8시까지 꼬박 일해도 하루에 5~7켤레만 만들 수 있다"며 "다른 등산화는 불편해도 내가 만든 등산화는 편하다는 말을 들으면 피곤이 싹 풀린다"고 했다.
김씨는
전남 곡성 에서 태어나 20대 후반에 상경, 노동판을 전전했다. 우연히 구두 수선 가게에서 일을 배워 2년 후인 1967년에 청량리에 조그만 구둣가게를 열어 등산화를 만들기 시작했다. 왕십리, 마장동 등에 분점을 내기도 했지만 무리한 확장으로 자금이 달려 5년 만에 망했다. 1970년대 중반 재기해 서울 마장동에 다시 가게를 냈지만 부동산에 손을 댔다가 모두 날렸다. 자살까지 생각했지만 우연히 등산화 한 켤레를 주문한 한 신부님에게서 "최선을 다해 정직하게 만들면 최고가 나온다"는 말을 듣고 마음을 다잡았다. 성당에 나가 세례도 받았다. 1979년에 세례명 '알퐁소'를 따서 가게 이름을 정했다.
김씨는 "두 아들은 제작 공정을 자동화하자는 이야기도 하지만 나는 반대한다"면서 "내 손으로 세계 최고의 등산화를 만든다는 자부심을 갖고 산다"고 말했다